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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차의 CoE, 비새

커피스터디

대만차의 CoE, 비새
지난 7월호에는 음료용에 적합한 차에 관해 이야기했다면 이제부터는 스트레이트 티와 시그니처 티로 주제를 옮기고자 한다. 이번 호에는 최고의 커피를 선정하는 CoE와 비슷한 비새에 대해 알아보자.(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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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구매한 차, 과연 제대로 산 것인가?

차는 타 기호식품에 비해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다. 외형도 비슷해 보이고, 포장지에 적힌 내용조차 참고사항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차에 대한 감식안이나 품평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경험, 노력이 필요하다. 차를 잘 모르면 바가지를 넘어 사기를 당하기 쉽다. 일례로 중국 여행 중 접하는 보이차는 먹어서는 안 되고, 먹을 수도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품질이 낮은 것을 떠나 위생적이지 않고 건강에 독이 되는 것이 많다. 차에 관심을 가지고 접근했던 많은 소비자가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흥미를 잃는다.

심지어 이런 일은 차 산지에 가도 자주 발생한다. 정품과 고급 차는 어딜 가든 수량이 적고 귀해서 그 가치를 알아보는 상대에게 팔기도 모자라기 때문이다. 포구에서도 질 좋은 생선을 찾으려면 발품을 팔아야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그렇다면 감식안이 없는 소비자는 좋은 차를 구할 수 없는 걸까? 결국 중간 상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는 걸까?

대만은 이에 대한 해답으로 ‘비새’를 제시한다. 비새는 대만의 시(市), 현(縣), 구(區)에서 주관하는 대회로, 국가 기관 전문가가 색과 향미, 외관 등을 까다롭게 평가해 등급을 매긴다. 어떤 차가 더 뛰어난지, 누가 더 품질 좋은 차를 만드는지를 겨루는 ‘투차(鬪茶)’의 개념도 포함되어 있어 차농들은 차의 품질 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게 된다. 덕분에 소비자는 양질의 차를 정당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고, 각 지역은 차에 대한 명성과 신뢰를 쌓게 된다.


차 업계의 CoE, 대만의 우량차비새(優良茶比賽)

대만은 독특하게 차만을 전담하는 국가 기관이 존재한다. 이는 이 나라가 차 산업을 적극적으로 장려한다는 뜻이다. 차를 즐기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신뢰할 수 있는 대만차’의 이미지는 대만이 오랜 시간 기술 발전과 품질 향상, 위생에 힘써 온 결과다. 그리고 그 노력에서 절대 뺄 수 없는 것이 앞서 언급한 비새다. ‘비새(比賽)’는 우리말로는 ‘경쟁’, ‘시합’, 영어로는 ‘Competition’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시·정부 단위의 차 경합이라고 할 수 있으며 1970년대에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초기에는 일부 지역에서만 행해졌으나 차의 품질 향상과 제다 기술의 발전, 브랜드화, 소비자가 믿고 구매할 수 있는 환경 조성 등에 기여해 현재는 대만 전역에서 각 지역의 특색있는 비새가 열린다.

비새는 보통 차 품질이 가장 좋은 계절에 개최된다. 대부분 봄과 가을에 열리고 일부는 차의 특성에 따라 여름에 진행되기도 한다. 차를 접수하는 시점부터 비새가 끝날 때까지 출품자에 대한 정보는 철저히 통제되며 심사위원도 확인할 수 없다. 오로지 차의 품질만을 놓고 심사하는 것이다. 진행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대만 시·정부·농회 홈페이지 등에서 일정 및 심사 기준 공지 확인


2 접수 기간 내 사전 접수 및 참가비 지급 후 정해진 양의 차 출품

각 차는 무게를 재고 접수 번호와 임의의 심사 번호를 부여받는데, 번호는 암호화되어 비새가 끝나기 전까지 비공개된다.

※ 출품량은 23근(13.8kg)이 일반적이며, 차 종류에 따라 11근(6.6kg)을 출품하는 곳도 있다.


3 차의 샘플을 채취해 농약 잔류 검사

주최사, 국가 기관, 무작위 민간단체에서 검사하며 수입차 출품, 농약 기준치 초과 등의 규정 위반 시 관련 법령 및 비새 규칙에 따라 실격 처리 혹은 전량 폐기된다.


4 관능 평가에 따른 심사

150cc 품평배에 찻잎 3g과 100℃의 물을 넣고 6분간 우린다. 이후 찻물의 수색, 향, 맛, 엽저(우려낸 찻잎)를 확인한다. 향 30%, 맛 40%, 외관 20%, 수색 10% 등의 기준으로 평가한다. 대만 행정원 농업위원회 차업개량장 전문 인력과 주관 부서 평차 위원이 함께 1차 심사를 진행한다. 이때 ‘미입선’, ‘우량장’, ‘입선’ 세 가지로 등급을 매긴다. 그 후 입선한 차는 차업개량장 전문 인력이 2차 심사를 한다. 필요에 따라 수차례 재평가하기도 한다. 차 출품량에 따라 심사 단계나 기간에 차이가 있고, 심사는 차종에 맞는 물 온도와 우리는 시간(조형 - 5분, 동방미인 - 95℃, 5분 30초)을 정해 진행한다. 또한 차종 특성에 맞게 평가 항목 당 점수가 다르다.


5 심사 후 비밀번호(접수ㆍ심사 번호와 대조) 및 입상자 명단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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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등장을 받은 차는 대부분 심사 결과 공개 후 10분 안에 완판

※세부 분류 기준, 등급 명칭, 등급별 비율은 지역ㆍ작황에 따라 상이


6 비새 결과에 따라 2~3주 동안 포장

300g, 150g, 75g 등으로 포장되며 상자와 틴케이스에는 주최사, 연도, 시즌, 차 고유번호, 수상 등급 등이 적힌 실Seal이 2중, 3중으로 붙는다. 포장이 끝나면 정해진 기일에 출품자에게 반환되며 미입선 차는 탈락 이유와 개선 사항을 전달받는다.


7 시상식, 전시 판매회 진행

입상자들에게는 현판과 상금이 부여되고, 이후 일반 소비자가 비새차를 맛보고 구매하는 등의 행사가 열린다.


지금은 차농, 차상이 행사 마지막 날 품평을 참관할 수 있게 되었지만, 1970~1980년대 초기는 그렇지 않았다. 심사는 물론이고, 비교적 단순한 포장 작업까지 외부와 차단된 장소에서 진행될 정도로 엄격했다. 야밤에 포장된 차를 전시 판매장으로 옮기는 등 비밀리에 움직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방식이 어떻든 예나 지금이나 차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비새는 무척 뜻깊은 연례행사다.


다른 나라에는 비새가 없을까?

어느 산지나 차에 대한 공정한 평가, 신뢰성 확보와 품질 향상을 추구할 것이다. 하지만 차는 차나무 수령, 제다, 품종, 산지, 보관 방법 등에 따라 세분화되고 그 종류가 다양하기에 공통된 평가 기준을 고수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 때문에 산지마다 차를 평가하는 기준과 도구가 다르다. 예를 들어, 향이 중요하게 평가되는 무이암차는 개완배를, 긴압(단단하게 압축)된 보이차는 250cc 품평배를 사용한다. 인도에서는 차를 거래할 때 경매를 통한 차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국가 차원에서 차를 평가하고 이를 보증하는 나라는 대만이 유일하다.

비새가 국가 단위의 신뢰를 얻게 된 데에는 대만의 차 관련 기관 ‘행정원농업위원회차업개량장(이하 차업개량장)’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 1903년 개설된 차업 개량장은 중앙 정부 행정원 산하 직속 기관으로 품종 개발, 다원 관리, 기술 개발, 농약 및 병충해 관리, 차농 지원, 제다 기술 및 품평능력 향상, 제다 기계 연구, 마케팅 등 차와 관련된 업무만을 다룬다. 차만을 다루는 국가 기관은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물다. 현재 대만 북서부 직할시인 타오위안(桃園市)을 비롯해 원산(혹은 문산, 文山區), 위츠(魚池鄉), 타이동(台東縣)에 분장이 있다. 비새 심사는 대부분 차업개량장 소속 중에서도 최고전문가로 꼽히는 창장 혹은 부창장이 맡는다. 보조 심사위원은 시험을 통해 매 시즌 선발하는데 국가적 관리를 받는 시험이기에 자격조차 얻기 어렵다. 티수입사 <이음>의 박주현 공동 대표는 외국인 중 유일하게 시험 응시 자격을 가지고 있다. 

 월간커피DB
사진  월간커피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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