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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E Epilogue

전문가 칼럼

CoE Epilogue 좋은 커피를 만드는 확실한 방법 - 온두라스 CoE 2019
2019년 5월 28일부터 나흘간 열린 온두라스 CoE는 높은 참여율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열기로 가득했으며 동시에 대회 내내 긴장감을 놓칠 수 없었다. 접수 공지를 통해 역대 최대로 출품된 250여 개가 넘는 농장의 커피는 먼저 1차 심사인 프리셀렉션을 거치고, 2차로 내셔널저지(온두라스 국내심사팀)의 필터링을 통해 40개 커피만이 남아 3차 인터내셔널저지(국제심사관)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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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회는 온두라스 제1의 도시인 산 페드로 술라San Pedro Sula 인근에서 진행됐는데 시민들의 대정부 투쟁이 예고된 상태라 경비가 삼엄했다. 그렇지 않아도 무시무시한 살인율과 불안한 치안 상태를 보이는 온두라스에서 열리는 대회다 보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대회가 시작되고 온두라스 커피에 대한 이해를 위해 심사관 칼리브레이션calibration이 진행되면서 눈앞에 놓인 다양하고 개성 넘치는 온두라스의 커피를 슬러핑slurping 하다 보니 걱정 따위는 눈 녹듯 사라졌다. 전체적으로 묵직한 맛을 보여줬던 예년의 커피에 비해 조화롭고 부드럽고 풍부한 느낌의 커피가 테이블에 올라와 있었는데 시대의 흐름에 맞춰 온두라스의 커피 성향 역시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있는 듯했다. 정신없이 칼리브레이션을 마치고 본선 대회 1라운드의 아침이 밝았다.

커피는 총 40종으로 한 번에 10개씩 총 4개의 세션으로 구성됐는데 그중 3세션은 워시드, 1세션은 내추럴로 나뉘었다. 이는 지난해부터 생긴 COE의 새로운 규정으로 심사관들의 센서리 감각에 대한 이월 효과Carryover Effect를 방지하고자 프로세싱별로 커피를 분리한 것이다. 최근 커피 시장에는 내추럴 뿐만 아니라 아나에어로빅 커피Anaerobic Coffee 등이 대거 등장했는데, 이렇게 강한 느낌의 커피가 워시드 커피 사이에 존재하면 제대로 된 감각 평가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긴 새로운 룰이다. 40개 커피를 대상으로 한 1라운드를 진행하는 동안 농부들이 흘린 땀이 보이는 듯해 가슴이 벅차기도 했다. 그만큼 모든 커피가 하나하나 클린하면서도 뛰어난 단맛을 가지고 있었다.

평가가 끝나고 다음 날은 COE 2라운드가 진행됐는데 이때는 1라운드에서 87점 미만을 받은 커피는 모두 탈락하고 상위 커피만 남아있었기 때문에 보다 엄숙하게 커핑이 진행됐다. 참고로 85점 이상부터 87점 미만 커피는 ‘내셔널 위너’라는 상을 받게 되며 별도의 경매가 이뤄진다. 따라서 2라운드는 87점 이상의 고품질 커피가 남게 되는데 이 중에서도 최종 10개만이 3라운드로 진출하게 된다. 그리고 로스팅은 라운드별로 새롭게 진행되기에 참가한 농부들은 혹시나 전날보다 로스팅이 잘 안 됐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듯했다. 하지만 온두라스 COE 커피의 로스팅은 COE 로스팅 경력 20년차 베테랑 로스터가 진행했기 때문에 라운드마다 오버 혹은 언더 로스트 커피가 하나도 없을 만큼 균일하게 로스팅됐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마음 편하게 커핑을 진행할 수 있었고 그렇게 대망의 TOP 10 커피가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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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에는 상위 10개의 커피에 관해 오랜 시간 섬세하게 커핑 하며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미 1라운드 때부터 코드 번호 9587의 커피가 우승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뛰어난 베르가모트와 오렌지 플레이버에 복잡하면서도 긴 여운, 그리고 크리스털처럼 깨끗해 이변이 없는 한 해당 커피가 챔피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날 저녁 모든 농부, 정부 기관에서 온 인사들과 함께 순위 발표 및 시상식이 열렸다. 1위는 산타루시아Santa Lucía의 워시드 게이샤가 차지했다. 온두라스 COE는 최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워시드 게이샤가 챔피언이 되곤 했는데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 지역적으로는 보통 산타바바라Santa Barbara와 라파즈La Paz 지역이 강세였지만 이상하게도 챔피언은 늘 다른 곳에서 나왔는데, 이번에 우승한 산타루시아 역시 코마야과Comayagua라는 비교적 규모가 작은 지역에서 탄생한 커피였다. 워시드 프로세싱이 강한 온두라스의 특성상 대체로 워시드 커피가 COE를 수상했지만, 내추럴 뿐 아니라 아나에어로빅 커피도 처음으로 19위에 오르며 향후 돌풍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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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루시아는 무려 94.84점을 받아 근대 온두라스 COE에서 최고점을 경신하며 스타 커피가 됐다. 이날 함께 심사했던 <마루야마 커피Maruyama Coffee>의 켄타로Kentaro 대표는 이 커피를 두고, “내년에 진행하는 에티오피아 COE가 벌써 열린 줄 알았다”는 조금은 농담 섞인 그러나 어찌 보면 매우 적합한 표현의 찬사를 보냈다. 시상식이 끝나고 1위를 한 농부에게 축하를 건네며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어떤 독특한 프로세싱을 가졌는지, 이 커피의 고도는 얼마나 높은지 그리고 커피를 재배할 때 어떤 방식을 이용했는지 등 1등 커피의 비밀에 관해 물었다. 그러나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농부는 매우 덤덤하게 다음과 같이 답했다. “이 커피는 다른 게이샤에 비해 고도가 높지도 않고 일반적인 워시드 가공 외에 아무것도 한 것이 없어요.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이 나무를 심고 가꾸는 동안 갓난아이처럼 조심스럽게 다뤘던 것밖에 없어요.”

매우 충격적인 대답이었다. 왜냐면 심사위원으로서 항상 맛있는 커피가 있을 때마다 다른 점을 찾아내려 했으며 이를 통해 커피 맛이 달라지고 새로운 맛이 발현된다고 믿어, 다음에도 새로운 것을 찾아야겠다는 강박 속에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저 묵묵히 최선을 다해 커피나무를 내 아이처럼 키운 농부의 순수함을 보지 못하고 다른 상념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그렇다. 커피는 농작물이고, 농작물은 곧 사람과 같은 생명체다. 그래서 사람처럼 고귀함을 느끼며 정성을 다하고 가족과 함께 생활하듯이 커피를 대할 때 비로소 좋은 커피가 된다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한데 이제서야 다시 알게 된 것이다. 단순하면서도 자명한 진리를 찾기 위해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할 때쯤 온두라스의 밤은 저물어가고 있었다.

*커피미업에서는 온두라스 COE를 국내에서 소개할 수 있도록 경매에 참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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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커피미업 대표
現 CoE 국제심사트레이너
現 SCA AST

 김동완
사진  김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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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ictoriabc

    역시 커피도 정성인것 같아요 :) 온두라스커피 마셔보고 싶네요ㅎㅎ

    2019-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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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ANLEE

    마지막 문단이 너무 감명깊네요...특이한 것 보다는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꾸준하게 운영하고 계시는 농장들이 더 잘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2019-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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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터크로아상

    커피도 하나의 생명체라는 생각이 드네요. 1위로 선정된 커피가 뭔가 아주 특별한 비법이 아닌 갓난아이를 보살피듯 아주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이 저에게도 충격?이라고 할까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렇게 CoE과정의 이야기를 직접 보니 정말 재밌습니다.

    2019-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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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리파크

    온두라스 커피!! 중남미 커피에서 온두라스라는 나라는 잘 몰랐는데 이렇게 소식을 보니까 흥미로워요 ㅎㅎㅎ

    2019-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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