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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존재를 나타내는 이름, 품종의 진실 혹은 거짓 Ⅱ

전문가 칼럼

커피의 존재를 나타내는 이름, 품종의 진실 혹은 거짓 Ⅱ
앞서 언급한 ACE의 품종 재조정은 많은 커피인에게 큰 시사점을 남겼다. 커피 품종 또한 유전자로 검증해야만 보다 객관적인 증명이 완료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품종의 객관적인 기준이 되는 유전자 정보는 무엇을 기초로 만들었으며 신뢰성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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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품종, 진실은 무엇인가?
아라비카 커피의 품종에는 재래종이라 알려진 티피카와 버번을 중심으로 수천 가지가 존재한다. 카페 임포츠에서 발표한 ‘아라비카 커피 품종나무’의 분류 체계처럼 커피는 재배 지역의 기후나 환경에 따라 수많은 변이를 일으켰고, 모든 품종이 전 세계에서 자라고 있다. 예를 들어 케냐에서 주로 재배되는 SL-28, SL-34 같은 품종이 중미의 코스타리카에서 자란다거나, 브라질의 대표 품종 문도노보가 페루에서 자라는 등 품종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이처럼 품종은 다변화를 거듭하고 있으며 특히 ‘게이샤’는 전 세계적인 인기 덕분에 파나마뿐 아니라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에서 재배된다. 오층커피랩 공 대표는 “요즘 게이샤가 너무 흔해진 탓인지 게이샤 같지 않은 커피가 너무나 많다. 가격을 보면 게이샤인데 향과 맛은 그렇지 않은 커피를 만날 때마다 품종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는데, 이번 페루 CoE와 WCR 검증 건이 의문을 해소해줄 수 있는 객관적 근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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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생산국과 소비국의 품종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차이가 있다. 페루 쿠스코 퀼레우노Quellouno에서 핀카 치리로마Finca Chiriloma를 운영 중인 에드윈 퀴아Edwin Quea는 “새로운 품종을 심을 때 종자를 인근 종묘상에서 사는 경우가 많다. 아마 게이샤 잉카도 여기서 기인한 일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농부는 종자를 구매한 곳에서 제공 받은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주변에서 게이샤라고 하면 그렇게 생각할 뿐 이를 검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주로 커피나무의 키, 잎의 생김새와 색상, 가지의 간격 등 물리적 요소로 품종을 판별하지만, 최근 새로운 품종이 쏟아져나오는 탓에 애매한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 속, 모든 커피를 WCR의 유전자 검사를 통한 인증을 거쳐 판매가 이뤄진다면 커피 가격의 상승은 자명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개인카페 대표는 “현재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단순히 커피를 좋아하는 것에서 게이샤에 대한 호기심으로 살짝 발을 걸친 상황이다. 하지만 소비자는 가격에 민감하다. 아무리 맛과 향이 뛰어나고 특별한 게이샤라 할지라도 결국은 가격이 제일 중요하다”며 “명확한 증명서를 동반한 값비싼 게이샤보다는 증명서는 없어도 게이샤 항미를 가진 합리적인 가격대 커피를 선택할 확률이 높다. 품종 증명서를 함께 제공해 판매하는 게 대중적인 흐름이 된다면 울며 겨자 먹기로 대세에 편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커피뿐 아니라 모든 농산물의 품종은 해당 작물의 품질을 가늠하고, 향과 맛을 짐작할 수 있는 결정적 척도다. 모든 기호식품이 그렇듯 트렌드에 맞게 살아남는 품종과 도태되는 품종이 존재하기 때문에 커피 품종 또한 이러한 흐름과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번 페루 CoE의 WCR 유전자 검사가 향후 열릴 CoE의 커피 품종 관련 신뢰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Mini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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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핑포스트 이치훈 대표

2019 페루 CoE 1, 2위 랏의 품종 변경에 대한 의견이 있다면?
처음에는 그저 황당했다. 내가 낙찰 받은 커피가 유전자 검사를 통한 품종 검증이 필요하다는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제는 품종까지 검증 받아야 하는 시대라니 신기하면서 서글프기도 하다.

1위 랏이 코스타리카 95라는 사실이 놀랍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코스타리카 95는 코스타리카에서 개발된 카티모르 계통의 품종으로, WCR이 규정짓기로도 고지대에서 생산된 코스타리카 95는 컵 퀄리티가 낮은 걸로 나와 있다. 그런데 이 품종이 1위라는 사실이 여전히 의심스럽다. 하지만 내가 맛본 1위 커피는 매우 독특한 향미를 가지고 있었고, 품종에 상관없이 특별한 커피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품종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커피를 바라봐야 할 시점이지 않을까.

공교롭게 2019년 낙찰 받은 1, 2위 커피 모두가 품종 관련 이슈가 있었다. 향후 판매에 대한 계획이나 방향이 있다면?
커핑포스트는 항상 최고의 스페셜티 커피만 판매한다는 콘셉트로 판매를 해왔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품종이야 어찌 됐든 CoE 1, 2위고 90점이 넘는 프레지덴셜 품질의 커피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체 커핑에서도 놀라운 특징들이 관찰됐기 때문에 오히려 스토리텔링을 이용해 더 원활한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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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층커피랩 공근우 대표

이번 CoE의 유전자 검사에 따른 품종 변경에 대한 의견이 있다면?
품종은 늘 농부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는 영역으로 여겨져왔고, 나무의 물리적 특징으로 짐작해올 뿐이었는데 이를 유전자로 분석할 수 있는 자체가 큰 의미라고 생각한다. 이제 보다 객관적인 잣대로 품종을 분류할 수 있는 토대가 된 것이 아닐는지.

유전자 검사를 통한 품종 검증의 부정적 효과는 없을까?
물론 모든 커피의 유전자를 분석해 품종을 인정하는 자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금전적, 시간적 소요비용이 크기 때문에 대세로 자리 잡지는 못하리라 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품종 증명서를 갖췄다는 프리미엄을 커피 가격에 녹여내는 경우가 발생할 것으로 생각한다. 커피에 유전자 검사가 도입된다는 자체가 커피 특유의 감성을 파괴하는 것도 부정적 효과가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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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품종 관련 트렌드
2020년 현재, 게이샤 열풍은 건재하다. 많은 커피인이 게이샤 커피를 원하지만 가격대로 인한 진입장벽이 워낙 높아 가격이 합리적이면서도 좋은 품질의 게이샤가 있다면 구매를 망설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커핑포스트 이 대표는 “정말 특별한 커피를 판매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기 때문에 가격이 조금 높더라도 최고의 커피를 찾아내고 싶다. 현재 우리나라 커피 시장은 가격이 좋고 향미가 중간 수준인 커피를 찾는 게 아니라, 가치에 투자할 수 있는 충분한 토대가 마련됐다고 생각한다. 아마 2020년에는 더 많은 종류의 게이샤가 우리나라로 수입될 것이라 본다”라고 말했다. <어라운드커피> 탁영준 대표는 “게이샤의 인기가 이렇게 오래가는 것이 신기하다. 신맛 나는 커피를 싫어하던 대중들이 이제 게이샤를 경험하려는 수준으로 발전했고 이에 따라 보다 많은 게이샤가 필요해진 것”이라며 “사람마다 기대하는 향미에 조금 차이가 있는 만큼 다양한 타입의 게이샤가 국내에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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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샤와 더불어 품종 트렌드의 핵심은 ‘하이브리드 품종의 강세’다. 2012~2013년경 중미를 강타한 커피 녹병은 품종의 생태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병충해에 강한 커피 품종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그 중 일부로 전통적인 1세대 품종 카티모르, 사치모르 계통을 예로 들 수 있으나 이들은 향미에 한계가 있어 재배를 꺼리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러한 가운데 기존에 없었던 이름으로 소개되는 하이브리드 품종의 약진이 눈에 띈다. ‘H1’, ‘F1’ 등 카티모르와 사치모르 계통의 품종에 하나의 품종을 더 교배시킨 2차 교배종으로, 맛과 향을 강화하려는 목적에서 개발된 품종이다. F1 중 가장 대표적인 품종은 ‘센트로 아메리카노’. 사치모르와 수단 루메의 혼합종으로 생산성이 높고, 병충해에 강할 뿐만 아니라 향미적으로도 뛰어난 특징을 보여 F1 품종 중 가장 많이 장려되고 있다. 커핑포스트 이 대표는 “개인적으로 재래품종을 선호하기는 하지만 F1 계통 품종이 요즘 눈에 띈다. 생산국의 처지에서 생각했을 때 생산성 개선이 가능하고 병충해 저항력과 뛰어난 향미를 지녔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 말했다.
결국에 품종의 트렌드는 맛과 향의 특별함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이 대표는 “스페셜티의 홍수 속에 사는 우리는 더욱 특별한 맛과 향을 지닌 커피를 찾을 수밖에 없다. 사람의 입맛이 참 간사한 게, 고품질 커피를 맛보기 시작하면 낮은 등급의 커피에는 거부감을 갖게 된다. 품종에 대한 선호도도 살펴보면 아직 게이샤, 티피카 등 재래종의 인기가 압도적으로 높지만 앞으로는 센트로 아메리카, 문도마야, 스타마야 등 하이브리드 품종이 더욱 자주 등장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송호석
사진  송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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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썬카페

    투명성을 위해서라도 모든 종자는 WCR이든 자국연구소든 품종인증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커피가 좀 뒤늦게 시작되고 있죠 이미 다른 과수나 와인은 품종이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으니까요
    비용은 기술누적으로 순식간에 단축되거나 국가기관이면 무료로 진행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2020-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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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前Poodlehair

    아무래도 기후와 환경이 계속해서 변화하니 이런 조건에서도 잘 자라는 품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20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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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래프트

    최근 몇년간은 쭉 게이샤의 강세인데 뭔가 새로운 품종이 등장했으면 하네요~

    20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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